저는 AI라는 게 최초로 인간 역사에서 인간의 맞은편에 대화 상대가 마주 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AI와 사랑에 빠지는 게 가능할까보다 훨씬 중요한 질문이, 만약에 AI와 사랑에 빠진다면 왜 빠질까인 것 같아요.
안녕하세요, 국내 유일무이 영화 채널 '영화를 보다'의 김경식입니다. 영화를 잘하는 할아버지가 되고 싶은 김시선, 영화를 과학으로 보고자 나온 권석준, 철학 유튜버이자 작가 충코 이충영입니다. 지난주 예고해 드린 대로 오늘은 2019년에 나온 DC 코믹스의 캐릭터 중 조커가 빌런이 된 배경을 보여주는 영화, <조커>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영화 <조커> 개요 및 빌런의 탄생
아서 플렉이라는 인물은 뉴욕에서 광대 분장을 하고 밥벌이를 하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인물입니다. 그는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데, 어떤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오는 질병을 가지고 있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습니다. 동시에 아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경험과 환경에 대한 불만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이 계속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받던 어느 날, 지하철에서 큰 사고가 벌어지면서 급격하게 변화를 겪게 되고, 우리가 아는 그 빌런 '조커'가 되는 과정을 그리는 것이 영화 <조커>입니다. 한마디로, 사회에서 소외된 인물이 어떻게 사회의 악당으로 변모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이야기죠.
감독의 독특한 연출 철학과 배우의 광기
이 영화의 감독 토드 필립스는 원래 코미디 영화, 특히 <행오버> 시리즈로 유명했습니다. 그런 그가 사회 비판적이고 다크한 분위기의 <조커>로 베니스 영화제 황금 사자상을 받았다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아트 영화 위주의 베니스 영화제에서 DC 코믹스 기반의 상업 영화가 최고상을 받은 것은 그만큼 <조커>가 인간 본성을 깊이 있게 그려냈기 때문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감독의 이러한 장르 전환은 한국 사회에서 '너는 이것밖에 못 한다'는 편견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행복하고 즐거운 것을 찍는 사람이 오히려 불운한 것도 잘 찍을 수 있으며, 감정의 양극단을 경험한 사람이 감정의 대비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호아킨 피닉스의 압도적인 연기는 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그는 아서 플렉이라는 인물이 자신의 입을 찢는 과정에서 그 입을 엄청나게 확장하여 보여주며, 자신의 의지대로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없고 억지로 웃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인물을 연기합니다. 심지어 20kg 이상을 감량하여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외로운 늑대 같은 모습을 통해, 영화의 시작부터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줍니다. 이러한 신체적 변화는 그가 춤을 출 때도 자유로움을 느끼게 하며, 캐릭터에 대한 몰입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감독은 호아킨 피닉스에게 아서 플렉이라는 배역이 정체성을 찾다가 실수로 성장을 해 버린 캐릭터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영화는 또한 '입'에 관한 영화라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인간이 이성적으로 언어를 통제하며 사는 것과 달리, 조커는 자신의 입을 통제할 수 없으며, 기존의 언어 세계에 도전하는 면모를 보여줍니다. 이는 배트맨의 가면에서 입 부분이 드러나는 것과 대조되며, 동물적인 본능과 사회적 규범 사이의 갈등을 상징합니다.
사회적 배경과 악당 탄생의 아이러니
영화 <조커>는 단순히 빌런의 기원을 다루는 것을 넘어,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모순과 그로 인해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사회의 악당으로 변모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처음부터 빌런이 아니었던 아서 플렉은 사회적 약자였지만, 주변의 오해와 무시 속에서 점차 변해갑니다. 그는 자신이 빌런인지도 모른 채, 사회적 인물이 되어버린 아이러니를 보여줍니다.
특히 영화의 배경인 1980년대 초반의 고담 시티는 당시 뉴욕의 '깨진 유리창 이론'과 유사한 사회적 붕괴를 보여줍니다. 범죄가 통제되지 않고, 이웃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며, 공동체가 해체되는 시점의 이야기입니다. 이는 개인의 서사가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환경의 변화와 한계가 낳은 결과임을 시사합니다. 조커의 탄생은 개인적인 불안과 고립이 어떻게 전체주의적 현상으로 발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폭력을 미화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 내면에 있는 진짜 원인을 들여다보도록 발제를 던집니다. 폭력이 특정 상황에서 정당화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사회마다 시대마다 다르지만, 결국 지금 사회가 정한 선을 넘어서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는 논의로 이어집니다.
현실과 망상, 그리고 영화적 미학
<조커>는 암울하고 희망 없는 전개지만, 역설적으로 따뜻한 색감과 아날로그 카메라(노모 카메라)를 사용하여 1970~80년대의 따뜻한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드러냅니다. 이는 조커(아서 플렉)의 입장에서 영화가 행복한 꿈을 꾸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말이 아무도 듣지 않다가 드디어 듣게 되는 과정은 아서에게는 악몽이 아닌 꿈과 같은 현실이었을 것입니다.
영화 내내 현실인지 망상인지 모호한 장면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특히 아서가 갑자기 소피에게 키스하거나, 자신이 꿈꾸던 머레이 쇼에 출연하는 장면들은 망상으로 볼 수 있지만, 감독은 이 망상을 현실로 바꾸는 충격적인 연출을 통해 관객에게 더욱 깊은 혼란과 공포를 선사합니다. 이는 아서가 사람들을 죽이고도 죄책감 없이 행동하는 모습과 연결되며, 관객 또한 현실과 망상의 경계에서 끌려다니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합니다.
특히 조커가 계단을 내려오는 장면은 그의 심리 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집으로 가는 고행의 길이었던 계단을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때만큼은 자신 있게 춤추며 내려오는데, 이는 선을 추구하는 것이 어렵고 악을 추구하는 것이 쉽고 즐겁다는 역설을 시각적으로 보여줍니다.
인간의 불완전성과 조커의 의미
조커는 분열성 인격 장애를 앓고 있는 인물로 진단됩니다. 아서 플렉과 조커라는 두 자아가 동시에 공존하며, 때로는 발현되기도 하고 순서를 바꿔가며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러한 정신 질환은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또 다른 분열증을 상징하며, 우리 사회의 '화병'처럼 마음의 질서가 사라지면 몸의 감각 질서도 사라지는 현상을 보여줍니다.
조커는 타인으로부터 무시받는 존재였지만, 빌런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다른 '광대'들로부터 도움을 받습니다. 이는 아서가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사회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꿈을 꾸었거나, 불특정한 광대들이 자신을 도와줄 것이라는 망상으로 비춰질 수도 있습니다.
영화는 폭력은 절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전제를 깔면서도, 조커의 불우한 환경과 사회 안전망의 붕괴가 그의 악행에 영향을 미쳤음을 지속적으로 제시합니다. 이는 관객에게 개인의 책임과 사회적 결과 사이의 복합적인 질문을 던지며, 문명이 진보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문제를 공동체 의식 안에서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함을 시사합니다.
조커는 코미디언이 되고 싶었지만 결국 폭도들의 상징이 된 인물입니다. 이는 히틀러가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총통이 된 것과 유사합니다. 결국 조커라는 인물은 그 자신만의 존재가 아니라, 그를 동감하는 사람들의 상징이 된 것이며, 인간 군중들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조커와 배트맨의 양면성을 보여줍니다.
마무리 감상평 및 명장면 추천
영화 <조커>는 폭력, 소외된 존재, 정신 질환, 미디어 윤리 등 다양한 측면을 다룬 철학적 의미가 깊은 작품입니다.
- 김시선 추천 명장면: 폭동이 일어나기 전 지하철에서 아서가 가면을 벗어 휴지통에 던지는 장면. 이는 가면 뒤에 숨지 말고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 권석준 추천 명장면: 조커가 빌런이 되기 전 분장실에서 찍힌 장면 속에 배트맨의 형상이 숨어 있는 디테일. 이는 누구나 완벽한 선도 악도 없으며, 인간은 바이폴라한 존재임을 상징합니다.
- 이충영 추천 명장면: 조커가 TV쇼에 출연해 "코미디는 주관적이다"라고 외치며 자신의 웃음의 맥락을 찾는 장면. 이는 사회적 기준에 대한 의심과 자신의 존재감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조커를 필요로 하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아서 플렉이 조커가 될 일이 없겠죠. 이 영화는 우리가 조커를 필요로 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고 있는지,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그를 욕망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집니다. 관객에게 깊은 사유의 여지를 남기는 불후의 명작입니다.